1. Dominique Jean Larrey and the Principles of Humanity in Warfare 요약
현재 세계는 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고, 병력 중 의무병과 군의관이 부상당한 적군 포로의 치료와 인력 분배를 하고있다. 정치적인 분류가 아닌 환자의 응급도에 따른 분류를 행하고 있는 미군측의 이러한 자세는 과거 전쟁에서의 인도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이는 Dominique Jean Larrey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Flying Ambulanes, 빠른 절단 시술로 유명하고, 그 외의 다양한 측면에서도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쟁 중 보기 힘든 인도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준 그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Dominique Jean Larrey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다가 surgeon인 삼촌을 따라서 의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불우하게 자란 가정환경 덕분에 용감하게 도전 해 나갔고, 후학을 가르치는 데에도 열성이었다. 그 결과 1789년에 1500명의 의학 교육생으로 구성된 단체를 조직하고 이끌어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다른 이들의 불행은 나에게 큰 영향을 준다. 심각한 재난은 내 영혼을 괴롭혔고 나를 깊은 슬픔의 구렁텅이로 끌고 내려갔다. 나는 내가 이러한 상황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생각하기도 했고, 실제로 상황을 개선해보고자 시도해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Larrey는 나폴레옹 곁에서 18년 있는 동안 수많은 전쟁과 교전을 치뤘다. 그는 개인적으로 심지어는 매우 치료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수천명의 부상병들을 치료하였고, 그의 최우선순위는 항상 모든 부상병들의 회복이었다. 그는 출신, 인종, 계급을 막론하고 치료하였으며 전쟁지역 거주민들과 그의 가축들까지도 치료하였다. 그는 가장 위급한 부상병부터 경미한 부상까지 분류하는 Triage 체계를 발명하여 활용하였고 당장 수술이 필요한 부상병부터 진료하고 치료하였다. Flying ambulace라는 현대의 구급차 개념의 마차를 활용하여 부상병을 수송하였고, 자신이 부상당해도 Flying ambulace가 자신을 책임지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군의 사기 진작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의 회고록에서 자신이 속한 군대와 전쟁한 적군 부상병의 치료에도 본인의 절단법을 이용하여 도움을 주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는 본인의 책무를 단순 수술 집행보다 더 막중한 것으로 다루었다. 그는 ambulace를 지속 가능하도록 운영하고, 부상병의 치료와 영양 관리 등을 담당하며 단순한 Surgeon 그 이상의 역할을 하였다. 그는 고관절이단술을 시행하면서 “수술이 아무리 잔인하더라도 사람을 살리거나 치료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인 surgeon의 행동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관료들과 사안을 논의함에 있어서 부상병의 처우와 치료에 관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고, 그의 진심과 성격을 아는 나폴레옹에게 찬사를 받았다.
Larrey는 앞서 말했듯이 적군 부상병을 치료하도록 지시하거나 직접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 군사 중 감옥에 갇혀있는 병사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불필요한 폭력과 고문을 지양하였으며 무고한 자국 병사들의 누명을 풀어주기도 하였다.
그는 정부 관료와 다른 많은 장군들에게 있어 빈축을 샀지만, 여러 생사의 고비를 부상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인덕에 의해 일반 병사의 도움과 희생으로 인해 넘기기도 하였으며, 본인의 적군에 대한 생각과 정책으로 인하여 넘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업적과 전장에서의 인간적인 면모로 인하여, 군의관들 중 Larrey의 덕목을 갖추었거나 보여준 사람에게 그의 이름을 딴 상도 시상되고 있다.
2. 본인이 가장 감동받고 닮고 싶은 부분과 그 이유
진영 논리와 흑백 논리에 사로잡혀 전시상황이 아닌 와중에도 서로 헐뜯고 험담하고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전시상황이 아닌데도 그렇다면 하물며 전쟁 중이라면 전쟁 중 적군을 천적으로 보고 잔인한 방식으로 적개심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한 다양한 전쟁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인과 가까운 사람이 다치고 본인 집단에 손해를 끼친 적군에게 의술을 베푸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존경 받는 까닭은 이러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한 개인의 목숨을 구하고, 부상을 치료한다는 목적에 있어 모범적으로 인도주의적인 의사가 아닌가 하는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사람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만약 개인의 생각과 사회의 생각이 다르다면, 동조자 효과에 의하여 개인이 뜻을 굽히거나 본인이 틀렸다고 생각하여 결국은 사회의 생각으로 바꾸기도 한다. 하물며 사회가 개인과 충돌한다면 개인이 버티고 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다른 장군들과 정부 관료들이 Larrey의 부상병 관리를 부담스러워하고 별로 좋게 보지 않았음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큰 압박으로 다가왔을텐데 이를 부상병의 보다 더 나은 관리를 위하여 전부 무시하고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 정말 감동적이었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닮고 싶은 부분은 Triage의 개념을 최초로 창시한 것이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을 당시에, 모든 사람을 인종, 지위의 높고 낮음 등의 개인적인 특성은 현대 사회에서도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인데, 이를 최대한 배제한 환자 분류체계를 발명해냈다는 것이 그의 인도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이 응급의학의 기초가 되는 Triage 개념의 시초라는 점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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